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본토 공습 (문단 편집) === 기아 작전 === '''기아 작전'''^^Operation Starvation^^은 폭격기를 이용해 일본의 해안을 [[기뢰]]로 도배해서 일본의 해상 수송망을 마비시키는 작전이었다. 해당 작전을 벌이던 당시 미군이 노렸던 해상 수송이란 한반도 및 중국으로 부터의 물자 공출/입수선과 일본 본토 내해의 해상운송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 기뢰전은 직접적인 폭격에 비해 눈에 보이는 전과는 낮았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오히려 더욱 뛰어났다. 커티스 르메이 전에 일본 본토 공습을 맡고 있던 헤이우드 셰퍼드 핸셀 소장이 철도와 도로 같은 교통망에 대한 정보를 갖고 이들 교통망을 노린 정밀 폭격을 했으면 이 기아 작전급 봉쇄력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다만 이런 작전을 하려면 교통망에 관한 정보와 함께 위에서도 언급된 제트 기류 문제가 가장 큰 장애물이었을 거다. 일본 본토와 동남아 점령지 사이의 수송은 이미 1944년에 절단나 버렸기 때문에, 1945년 들어서 외부로부터의 물자, 그 중에서도 점령지에서 수탈한 식량의 수입은 중국과 한반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또한 일본은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라는 지리적 특성상 본토 내에서의 물류 이동의 상당 비중을 해상 운송이 차지하는데, 이는 당시에는 물론이고 철도와 자동차 도로가 발달한 현대에도 마찬가지일 지경이다. 이 작전으로 인해 일본과 해외와의 해상 수송 및 연안 해운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이것들을 막아버리는 것은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따지자면 [[부산항]]과 [[인천항]] 등 주요 항구들이 기뢰로 폐쇄되고, 경부 축선과 호남 축선이 고속도로, 철도 할 것 없이 죄다 끊긴 것과 마찬가지. 이는 모든 자원 수급이 한계에 다다른 일본에겐 또다른 치명타였다. 그나마 기뢰밭을 뚫고 간신히 운항하던 극소수의 항로도 1945년 6월에 들어서는 사실상 끊겼다. 이 때가 되면 미군 잠수함대가 '''[[동해]]'''까지 진출했기 때문이다. 기아 작전은 도시 폭격과는 별개로 당시 일본인들에게 잊지 못할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 시기 일본에서는 해안가에 시체들이 가득하다는 흉흉한 얘기가 나돌았다. 그 시체들이 무엇에 당한 건지는 뻔할 뻔자다. 한편, 전쟁 말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일본 노년층들은 이 시기를 '소카이(疏開)'라고 부르며 치를 떤다. 폭격을 피해서 낯선 곳에 온 것도 모자라서 먹을 것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으니 당연지사. 절대적인 식량의 양 자체가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 있는 식량도 해운이 마비되면서 제대로 운송하지 못해 식량 공급이 마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일본 [[해상자위대]]의 소해 전력은 미국과 함께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데 그 이유가 이 기아 작전에 데인 경험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는 [[루머]]에 가깝다. 자위대의 비정상적으로 강대한 [[소해]] 전력은, 냉전 시기에 소련 해군 잠수함의 태평양 진출을 막기 위해 미국이 의도적으로 대잠 능력을 몰아준 결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